아젤리아에게
사실 이건 네 번째 편지가 아닙니다.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답장을 엄청 썼거든요.
매일매일의 일들을 적기도 하고, 답장이 너무 늦다며 탓하기도 하면서... 거의 일기네요.
요즘 내 취미랍니다!!!
이건 아마 스물여섯번째 쯤 될거예요.
뭐 그런건 됐습니다! 아아. 뭐가 당신에게 진짜 했던 말이고, 뭐가 가짜편지에 적었던 말인지 헷갈릴수도 있겠네요.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자, 가장 먼저 할 말은 역시 향수에 관한거네요. 나 엄청 감동받았습니다. 이런 선물이라니.
난... 이만큼 좋은걸 당신에게 줄 수 없는데!!!!! 아무튼 고맙습니다. 엄청엄청 소중하게 여길게요.
일년에 한 번씩 뿌릴게요. 너무너무너무 아까워서 쓰지를 못하겠어요.
하지만 향수는 오래두면 향이 변하잖아요? 어떡하면 좋지. 또 새로운 고민이 생겨버렸습니다...
당신탓이에요!!!!!!!!!
도서관에선 뭔가를 찾으셨나요?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 두 개가 나뉘어있다면... 우리 세상 말고 다른 세계도 있는걸까요?
그 뭐냐, 불교에서 얘기하는 거 있잖아요. 삼천대천세계... 맞나?
그쪽에도 종교는 있죠? 어떤 종교가 있을까요? 어쩌면 당신의 세계는 신이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난 신을 믿지 않지만요. 적어도 우리의 세상에서는.. 그야 신이 있다면 이렇게 모든 생명들이
멸망하도록 두고보지 않을테니까요.
우리들은 '과학'이란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인류가 사라지면서 그 기술들은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흠. 우리의 기술을 그쪽으로 보낼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이 될지도 몰라요. 아젤리아가 노벨상 같은 걸 탈 수 있게 노력해볼까나.
비밀 알려주면 협력하겠습니다!
내가 사는곳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요. 당신의 세계도 같을까요.
참고로 지금은 여름입니다! 그리고그리고, 전에 말했던대로 식물들을 보살펴봤어요.
말도 걸고. 쓰다듬어주고, 동화책도 읽어줬지요.
식물들은 강하니까, 이정도만 해도 혼자서 잘 자랄거라고 생각됩니다.
당신의 외모가 궁금해요. 사진 같은 것은 없나요?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랑 완전 다르면 놀랄지도.
사실 엄청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 아니에요? 엄청 크고, 날카로운 손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고,
온 몸에 반짝이는 비늘이 붙어있다든가... 계속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니까, 알려주세요!!!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젤리아에 대한 게 많이 궁금해요. 당신의 세계보다도, 엄청난 기술보다도, 에테르나 마력... 뭐 그런 알 수 없는
힘보다도.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떤 사람들과 지내왔는지. 어떻게 생겼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뭐 그런것들... 전부전부 알려주세요. 우리는 친구잖아요.
친구가 많다는 건 부럽습니다. 나한테 좀 나눠주면 좋겠어요! 이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예요? 역시 메이비일까? 메이비려나? 메이비겠지요?
저는 나무를 잘 탑니다! 내가 다치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설령 나무나 사다리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그정도로 고장날만큼 약하지는 않거든요. 슬슬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내가 인간들의 흔적을 좇고 인간을 좋아하는 건, 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지자면 인간들이 내 신인 셈이지요. 부모이기도 하고요. 또한 나는 인간을 닮게 만들어졌어요.
겉으로 보면 인간과 별로 다름이 없지요. 그러니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생에 가까운 존재가 당신의 세상에는 있는건가요? 하지만 당신은 아닌거고요.
아젤리아가 인간이란 사실이 슬퍼지려고 합니다.
모르겠어. 당신이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난 역시 '영원'을 동경하게 되는걸요.
하지만 일단은... 이해하려고 노력해볼게요.
아아. 역시 이곳의 '인간'이란 종족은 당신이 사는 세계의 '인간'과 비슷하거나 아주 같은게 맞는 것 같습니다.
수명이 같은걸 보면 말이에요. 아젤리아는 스물다섯살이라고 했었죠. 그럼 죽기엔 아직 멀었네요.
그런데 '이것저것 따지면' 나랑 비슷하다는 건 무슨뜻인가요?
나는 로봇이라 정해진 수명같은거 없지만, 아젤리아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오래오래 건강하도록 노력할게요.
나뭇가지에 완전완전 집중해봤는데 뭔가... 전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과 다른 세계에 태어났으니까 에테르 술사가 되는건 무리인걸까요.
재능... 전혀 없는걸까. 그렇다면 아쉽습니다!!!! 나도 골렘 만들고싶어!!!!!
모처럼 아젤리아가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화난 얼굴이 벽을 쳐서 부수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나는 실제로 인간을 본적이 없습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멸망해있었으므로...
그러니 그들의 흔적을 보며 상상하는 것 밖에 못하죠...
역시 당신의 세상에 갈 수 있으면 즐겁겠네요. '동네 꼬맹이들'이 어떤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다같이 힘을 합쳐 아젤리아를 괴롭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보통 동요를 부르지만, 그 외에도 인간이 남긴 음악은 다 좋아합니다.
아젤리아가 사는 세계의 음악도 꼭 들어보고싶네요. 그리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춤추는 건 좋아하나요? 나는 좋아합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둘 다를 함께 할 때,
나는 인간에게 만들어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음... 질문을 하면 할수록 아젤리아의 비밀이 어떤건지 전혀 감이 안잡힙니다.
나는 머리가 좋은편이 아닌걸요.
아젤리아는. 아젤리아의 비밀은.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세상에선 원래 그것이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이라니 부럽습니다. 나의 세상은... 끝끝내 평화롭지 못해서 모든것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는데 말이에요. 그래. 모든게 끝나서 이제 나는 평화로워요. 혼자서 말입니다.
그건 너무나 쓸쓸한 일이에요.
아!!!! 내가 준 동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세요. '동네 꼬맹이'들이라든가, 당신의 그 친구라든가.
여러 사람들에게... 그럼 기쁘겠습니다!!!!
참치캔이 없는 세계라니. 그럼 당신의 세상은 참치를 어떻게 오래 보관합니까?
설마 참치라는 물고기가 없는 세상인건 아니겠죠? 그건 아주 맛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전 먹어본 적 없지만... 우리세계의 인간들은 미식을 즐겼습니다.
다양한 요리가 발달했었지요. 아. 멸망하지 않은 세계였다면. 그렇다면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도 보내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 됐네요.
아젤리아는 인간이니 먹을걸 먹어야 살아갈 수 있지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합니까?
이번 일기... 아니 편지엔 아쉬운 소리를 좀 많이 했네요. 이런 절 견디세요!! 아젤리아!!!
아무튼. 답장 기대하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돼요.
당신의 편지가 찾아온 뒤로 저의 삶은 아주 즐거워졌어요.
아젤리아도 그런가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메이비가!!!